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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초기 '과학기술인 칭찬릴레이'로 시작한 '과찬의말씀'이 이제는 국가R&D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이 풀어놓은 현장 인터뷰로 발전하였습니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와 피부에 와닿는 알찬 R&D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찬의 말씀 75화

지피지기 백전불패, 보이지 않는 ‘독’을 상대하는 원더우먼 -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박은정 교수 -

참담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올해로 공론화 11주년을 맞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살균제 속 유해화학물질로 인해 산모와 영유아들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유례 없는 화학 재난 사고였다. 벌써 십 년이 넘은 사고이지만, 가해 기업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되돌릴 수 없는 가족의 빈자리, 잃어버린 일상 등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에도 우리 일상 속 생활용품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유명 커피 전문점 기념품 가방에서 검출된 발암성 물질, 국내 대기업 제조 유아용 물티슈에서 검출된 살균제 성분 등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일상 속 건강을 해치는 ‘독성 물질’의 존재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적 ‘독성 물질’과 맞서 싸우기 위해 분투 중인, 지피지기면 백전불패가 생각나는 주인공, 독성학자 박은정 교수를 만나보았다.

늦깎이 과학자에서 세계 1% 연구자까지

늦깍이 과학자에서 세계 1% 연구자까지

박은정 교수를 만나기 위해 NTIS 서포터즈와 함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찾았다. 위드코로나시대를 실감케 하듯, 오랫동안 고요했을 교정은 새 학기를 맞아 북적이고 활기차 있었다. 생기 넘치는 대학생들 사이, 씩식하게 걸어오는 그녀는 단연 돋보였다.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성 질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은정입니다." 짧은 소개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박은정 교수는 알아주는 별명 부자이다. ‘늦깍이 과학자’, ‘경력 단절 박사’, ‘세계 1% 연구자’ 등 다양한 별명에서 그녀의 다채로운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제가 결혼을 일찍 했어요. 아기를 낳고 석사를 마친 후 남편의 근무지인 지방에 1년 머물다 다시 서울로 와서 박사 과정에 지원했을 때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바로 또 시아버님께서 식도암 앓으셨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던 공부를 바로 시작할 수 없었어요.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었지만, 저는 이 시기를 거쳐 얻은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라는 별명이 저라는 사람의 가치를 가장 높여주는 수식어라고 생각해요.”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라는 별명은 ‘여성’, ‘나이’, ‘비명문대’, ‘비정규직’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박은정 교수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이자 찬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최근 그녀는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쉬지 않고 실험을 하고, 그 실험을 위해 절대적인 시간을 써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구자로서 논문을 내고 그 결과를 알려나가는 노력만으로 생활 속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대중들 스스로가 생활 속 독성의 경각심을 가지고 한 명 한 명의 노출량이 줄어든다면 독성으로 인한 질병, 그 질병을 겪는 환자의 수를 줄여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바쁜 연구 일정에도 틈틈이 대중서를 집필한 이유를 밝혔다.

사실 대중들에게 독성학이란 학문은 많이 생소하다. ‘독성’이 일상과 관련 없는 위협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알고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세제, 손소독제, 화장품 등이 모두 독성을 가지고 있다.

“저도 처음부터 독성학이란 학문을 알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살아가면서 내 몸을 망가트리는 게 무엇일까, 내 건강이 왜 나빠질까를 고민하다가 이 의문점을 연구하는 것이 결국 독성학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어요.”

박은정 교수는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을 하는 것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는 옛말처럼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모든 병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다. 다만 원인이 밝혀진 병이 많지 않을 뿐... 그래서 박은정 교수는 독성학이야 말로 병에 대한 ‘원인’과 ‘예방’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근원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성학이 정말 근원적인 학문이라고 저는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내가 살아가는 생활, 환경, 삶 속에서 내가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찾는 학문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제가 연구에 힘을 쏟아도 1년 동안 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어요. 후배 연구자나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연구 생활을 해준다면 더욱 다양한 질환의 증상을 완화하는 약제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성학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은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쓰이지만 정작 병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밝히려는 연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 낮은 투자로 귀결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이러한 현실 때문에, 근원적인 독성 피해를 막기 위해 독성학을 연구해 나갈 미래 독성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부분을 아쉬워했다.

0%의 확률, 도전, 그리고 최고의 팀을 이끌어 낸 실행력

0%의 확률, 도전, 그리고 최고의 팀을 이끌어 낸 실행력

박은정 교수는 교수가 된 후 많은 과제에 지원했지만, 연구자의 동시수행 과제 제한 규정인 3책 5공*에 포함되는 과제의 연구책임자로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 3책 5공(연구책임자 3개, 참여연구자 5개) :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법 제35조제1항에 따라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제 수를 최대 5개로, 그 중 연구책임자로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제 수를 최대 3개로 제한(출처: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제64조(연구개발과제 수의 제한))

“선정 확률이 거의 0%인 것을 알고도 이 과제는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거든요. 그 숙제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각 분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연구자들과 함께 팀을 꾸렸어요. 그랬더니 심사위원이 이 과제를 위해서 최고의 팀을 꾸렸다는 심사 의견을 주시더라고요. 그 순간 ‘나의 간절함이 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성학 연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고민, 연구 진행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첫 과제 선정에 이어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박은정 교수의 할 수 있는 힘, 바로 ‘실행력’이었다.

박은정 교수의 실행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 장소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곧바로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작은 일임에도 박은정 교수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고 이런 실행력이야 말로 그녀가 지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은정 교수의 도전의 결실이 바로 이다. 그녀는 이 과제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 따른 독성 작용 분류 및 예측 프로그램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금 정말 엄청나게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에요.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호흡기인데요. 유해 물질들이 실제로 호흡기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작용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세포를 망가트리는지 지금까지 나와 있는 데이터가 매우 제한적이에요. 데이터가 제한적이니, 당연히 예방 방법도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저희 팀에서는 이번 연구로 독성물질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 데이터 분류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화학 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모델링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호흡기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성 물질의 영향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부족한 까닭에 이 같은 예측 모델이 있더라도, 통계적 유의성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모델을 따라 만들어진 데이터를 기본으로 생활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긴다면, 매우 위험한 도전이라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덧붙여 연구를 진행하며 도움을 받았던 NTIS 서비스에 대해 추천했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필요한데, 각 부처에서 과제를 일일이 찾아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그런데 NTIS에서는 그게 다 모아져 있어요. 집약된 정보를 보고 ‘이 부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 그러면 내가 뭘 준비해야겠구나.’라는 것이 정리가 되니까, NTIS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일상을 지키는 히어로

일상을 지키는 히어로

앞서 언급한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를 집필을 계획한 결정적인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었다. 자신이 독성학자임에도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인지조차 못한 상황에 스스로 많은 반성을 했고, 앞으로의 연구 목표를 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독성학자로서 가장 마음 아팠던 사건인데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많은 분들이 생활 속 독성물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노출을 최소화 할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해야 해요. 지금 이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서를 쓰게 된 이유가 바로 그거였거든요.”

박은정 교수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일상을 지키는 방법은 첫째, 독성을 인지하는 것, 둘째, 스스로 화학물질 노출을 줄이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일상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계속하기를 바란다는 바램과 자신은 독성학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저는 독성물질 예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 연구생활을 다 바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연구결과가 많은 분들의 일상을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 박은정 교수의 모습에서 만화 속 히어로가 떠오올랐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처럼 개인의 명성이 아닌 모두의 일상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 그녀야말로 대한민국의 원더우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인생의
한 수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자신과의 약속

‘약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저는 ‘7시에 시작할거야’하면 늘 항상 7시에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생각하고 다짐한 것을 나 스스로 약속하고 지켜 나가요. ‘호흡기 분야만큼은 독성물질 작용을 밝혀낼 것입니다.’라고 이번 인터뷰에서 밝혔는데요. 저는 제가 말한 것에 대해서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아마 그런 저의 고집스러운 약속이 인생의 한 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희대학교 의학대학 박은정 교수

프로필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41세에 박사학위 취득 후 나노 독성학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실적을 발표해,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뽑은 ‘연구 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HCR)’ 3년 연속 선정됐다. 2017년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정교수로 임용 후, 현재는 단일·복합 혼합물 특성, 호흡기·피부 등 노출 영향 연구 및 예측 프로그램 개발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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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의 말씀 75화

지피지기 백전불패, 보이지 않는 ‘독’을 상대하는 원더우먼 -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박은정 교수 -

참담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올해로 공론화 11주년을 맞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살균제 속 유해화학물질로 인해 산모와 영유아들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유례 없는 화학 재난 사고였다. 벌써 십 년이 넘은 사고이지만, 가해 기업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되돌릴 수 없는 가족의 빈자리, 잃어버린 일상 등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에도 우리 일상 속 생활용품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유명 커피 전문점 기념품 가방에서 검출된 발암성 물질, 국내 대기업 제조 유아용 물티슈에서 검출된 살균제 성분 등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일상 속 건강을 해치는 ‘독성 물질’의 존재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적 ‘독성 물질’과 맞서 싸우기 위해 분투 중인, 지피지기면 백전불패가 생각나는 주인공, 독성학자 박은정 교수를 만나보았다.

늦깎이 과학자에서 세계 1% 연구자까지

늦깍이 과학자에서 세계 1% 연구자까지

박은정 교수를 만나기 위해 NTIS 서포터즈와 함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찾았다. 위드코로나시대를 실감케 하듯, 오랫동안 고요했을 교정은 새 학기를 맞아 북적이고 활기차 있었다. 생기 넘치는 대학생들 사이, 씩식하게 걸어오는 그녀는 단연 돋보였다.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성 질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은정입니다." 짧은 소개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박은정 교수는 알아주는 별명 부자이다. ‘늦깍이 과학자’, ‘경력 단절 박사’, ‘세계 1% 연구자’ 등 다양한 별명에서 그녀의 다채로운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제가 결혼을 일찍 했어요. 아기를 낳고 석사를 마친 후 남편의 근무지인 지방에 1년 머물다 다시 서울로 와서 박사 과정에 지원했을 때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바로 또 시아버님께서 식도암 앓으셨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던 공부를 바로 시작할 수 없었어요.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었지만, 저는 이 시기를 거쳐 얻은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라는 별명이 저라는 사람의 가치를 가장 높여주는 수식어라고 생각해요.”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라는 별명은 ‘여성’, ‘나이’, ‘비명문대’, ‘비정규직’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박은정 교수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이자 찬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최근 그녀는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쉬지 않고 실험을 하고, 그 실험을 위해 절대적인 시간을 써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구자로서 논문을 내고 그 결과를 알려나가는 노력만으로 생활 속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대중들 스스로가 생활 속 독성의 경각심을 가지고 한 명 한 명의 노출량이 줄어든다면 독성으로 인한 질병, 그 질병을 겪는 환자의 수를 줄여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바쁜 연구 일정에도 틈틈이 대중서를 집필한 이유를 밝혔다.

사실 대중들에게 독성학이란 학문은 많이 생소하다. ‘독성’이 일상과 관련 없는 위협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알고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세제, 손소독제, 화장품 등이 모두 독성을 가지고 있다.

“저도 처음부터 독성학이란 학문을 알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살아가면서 내 몸을 망가트리는 게 무엇일까, 내 건강이 왜 나빠질까를 고민하다가 이 의문점을 연구하는 것이 결국 독성학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어요.”

박은정 교수는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을 하는 것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는 옛말처럼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모든 병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다. 다만 원인이 밝혀진 병이 많지 않을 뿐... 그래서 박은정 교수는 독성학이야 말로 병에 대한 ‘원인’과 ‘예방’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근원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성학이 정말 근원적인 학문이라고 저는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내가 살아가는 생활, 환경, 삶 속에서 내가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찾는 학문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제가 연구에 힘을 쏟아도 1년 동안 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어요. 후배 연구자나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연구 생활을 해준다면 더욱 다양한 질환의 증상을 완화하는 약제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성학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은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쓰이지만 정작 병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밝히려는 연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 낮은 투자로 귀결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이러한 현실 때문에, 근원적인 독성 피해를 막기 위해 독성학을 연구해 나갈 미래 독성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부분을 아쉬워했다.

0%의 확률, 도전, 그리고 최고의 팀을 이끌어 낸 실행력

0%의 확률, 도전, 그리고 최고의 팀을 이끌어 낸 실행력

박은정 교수는 교수가 된 후 많은 과제에 지원했지만, 연구자의 동시수행 과제 제한 규정인 3책 5공*에 포함되는 과제의 연구책임자로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 3책 5공(연구책임자 3개, 참여연구자 5개) :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법 제35조제1항에 따라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제 수를 최대 5개로, 그 중 연구책임자로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제 수를 최대 3개로 제한(출처: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제64조(연구개발과제 수의 제한))

“선정 확률이 거의 0%인 것을 알고도 이 과제는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거든요. 그 숙제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각 분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연구자들과 함께 팀을 꾸렸어요. 그랬더니 심사위원이 이 과제를 위해서 최고의 팀을 꾸렸다는 심사 의견을 주시더라고요. 그 순간 ‘나의 간절함이 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성학 연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고민, 연구 진행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첫 과제 선정에 이어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박은정 교수의 할 수 있는 힘, 바로 ‘실행력’이었다.

박은정 교수의 실행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 장소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곧바로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작은 일임에도 박은정 교수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고 이런 실행력이야 말로 그녀가 지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은정 교수의 도전의 결실이 바로 이다. 그녀는 이 과제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 따른 독성 작용 분류 및 예측 프로그램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금 정말 엄청나게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에요.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호흡기인데요. 유해 물질들이 실제로 호흡기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작용 과정을 거쳐서 인체 내 세포를 망가트리는지 지금까지 나와 있는 데이터가 매우 제한적이에요. 데이터가 제한적이니, 당연히 예방 방법도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저희 팀에서는 이번 연구로 독성물질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 데이터 분류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화학 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모델링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호흡기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성 물질의 영향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부족한 까닭에 이 같은 예측 모델이 있더라도, 통계적 유의성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모델을 따라 만들어진 데이터를 기본으로 생활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긴다면, 매우 위험한 도전이라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덧붙여 연구를 진행하며 도움을 받았던 NTIS 서비스에 대해 추천했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필요한데, 각 부처에서 과제를 일일이 찾아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그런데 NTIS에서는 그게 다 모아져 있어요. 집약된 정보를 보고 ‘이 부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 그러면 내가 뭘 준비해야겠구나.’라는 것이 정리가 되니까, NTIS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일상을 지키는 히어로

일상을 지키는 히어로

앞서 언급한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를 집필을 계획한 결정적인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었다. 자신이 독성학자임에도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인지조차 못한 상황에 스스로 많은 반성을 했고, 앞으로의 연구 목표를 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독성학자로서 가장 마음 아팠던 사건인데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많은 분들이 생활 속 독성물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노출을 최소화 할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해야 해요. 지금 이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서를 쓰게 된 이유가 바로 그거였거든요.”

박은정 교수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일상을 지키는 방법은 첫째, 독성을 인지하는 것, 둘째, 스스로 화학물질 노출을 줄이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일상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계속하기를 바란다는 바램과 자신은 독성학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저는 독성물질 예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 연구생활을 다 바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연구결과가 많은 분들의 일상을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 박은정 교수의 모습에서 만화 속 히어로가 떠오올랐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처럼 개인의 명성이 아닌 모두의 일상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 그녀야말로 대한민국의 원더우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인생의
한 수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자신과의 약속

‘약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저는 ‘7시에 시작할거야’하면 늘 항상 7시에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생각하고 다짐한 것을 나 스스로 약속하고 지켜 나가요. ‘호흡기 분야만큼은 독성물질 작용을 밝혀낼 것입니다.’라고 이번 인터뷰에서 밝혔는데요. 저는 제가 말한 것에 대해서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아마 그런 저의 고집스러운 약속이 인생의 한 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희대학교 의학대학 박은정 교수

프로필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41세에 박사학위 취득 후 나노 독성학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실적을 발표해,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뽑은 ‘연구 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HCR)’ 3년 연속 선정됐다. 2017년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정교수로 임용 후, 현재는 단일·복합 혼합물 특성, 호흡기·피부 등 노출 영향 연구 및 예측 프로그램 개발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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