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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초기 '과학기술인 칭찬릴레이'로 시작한 '과찬의말씀'이 이제는 국가R&D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이 풀어놓은 현장 인터뷰로 발전하였습니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와 피부에 와닿는 알찬 R&D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찬의 말씀 76화

뚫리지 않는 방패, 동형암호의 아버지를 만나다 - 서울대학교 천정희 교수 -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암호의 역사. 암호는 ‘보호’와 ‘탈취’라는 싸움에서 가장 필요한 수단이자 기술이며, 생명을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니그마(Enigma)와 봄브(Bombe)의 암호대결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완벽하게 해독하는 ‘봄브’를 개발해 1,400만 명의 무참한 살상을 막아낸 이 후에도 암호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발전 이면에는 언제나 암호 기술 무력화라는 어둠이 함께하고 있다. 오늘도 소중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암호학의 성배인 ‘동형암호’를 기반으로 한 암호 솔루션 HEAAN(혜안)의 개발자 천정희 교수를 만났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암호학자

스타트업에 뛰어든 암호학자

천정희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이자 암호기술 전문기업 ‘크립토랩’의 대표이다. 직접 만나본 천정희 교수는 취재 전 확인한 수많은 기사 속의 ‘과학자’와 ‘교수님’의 학구적인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어려운 전문 용어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설명해 주는 ‘스토리텔러’의 모습이었다. 스토리텔러 천정희 교수는 어떻게 치열한 정보 보안의 전쟁터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정수론에서 시작해 순수 수학을 연구하며 제가 만든 연구 결과가 얼마나 잘 활용될 수 있는지 늘 궁금해 하며 현실적인 적용을 고민하다 보니 현재의 ‘암호론’을 연구하게 되었어요. ‘암호론’ 연구가 우리 산업 현장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추진력으로 현재 동형암호 전문기술 HEAAN(혜안)의 개발까지 이르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천정희 교수가 개발한 HEAAN(혜안)의 핵심 기술이자 4세대 암호로 불리는 동형암호는 과연 어떤 기술일까? 천정희 교수는 동형암호를 금고 속 데이터라는 쉬운 예를 들어 설명했다.

“동형암호는 연산을 보호하는 암호입니다. 동형암호가 있기 전에는 연산을 하려면 ‘암호’라는 금고에서 데이터를 꺼내 연산을 하고 다시 ‘암호’라는 금고에 넣어야 했습니다. 연산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데이터들은 해커의 표적이 되었죠. 하지만 동형암호를 사용하면 ‘암호’라는 금고에서 데이터를 꺼내지 않고 외부에서 암호화 된 채로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가공이 끝나면 그때 비로소 데이터를 꺼내볼 수 있는 것이죠.”

최근 우리는 데이터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머신러닝 혹은 AI의 경우 고도화된 데이터의 집합체이자 기술 그 자체다. 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천정희 교수가 동형암호 기술을 상용화하며 주목한 포인트도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데이터의 보호였다.

“최근 데이터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머신러닝 혹은 AI를 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Private AI는 동형암호 기술을 사용해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지요.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데이터들은 특히 더 암호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개인정보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중요도가 높은 데이터 분야인 금융·의료·마케팅 분야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기술상용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국방이나 교육, 납세 분야에서도 동형암호를 활용하면 중요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시대의 질서를 만드는 암호

데이터 시대의 질서를 만드는 암호

“몇 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한 흐름은 바로, 사이버 세상을 인터넷에 구축하는 노력입니다. 사이버 세상이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어 편리하지만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요. 이런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호하는 기술로 동형암호, 블록체인 등이 등장했고, 앞으로의 질서를 만드는 이러한 기술들은 수학이라는 학문에 기반해 진화할 것입니다.”

천정희 교수는 메타버스, 블록체인과 같은 서비스에서 나아가 앞으로 주목해야할 차세대 기술로 스낙(SNARK)을 꼽았다. 동형암호, 양자내성암호처럼 민감한 개인 정보를 암호화하면서도 정보의 유효성을 간결하게 단답형으로 검증할 수 있는 스낙(SNARK)이라고 불리는 계산검증 기술이 앞으로 더 많이 연구되고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기술이나 보안기술이 성숙할수록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더 단순해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인증을 위해 지문이나 홍채를 인식하는 작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고도화로 사용자의 자각 없이 여러 가지 요소를 체크해서 자연스럽게 인증하는 멀티 팩터 인증(Multi factor Authentication) 또는 무자각 인증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했다. 인증의 과정은 편리해지고 인증 처리 과정은 고도화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헐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길을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인증되면서 광고판에 맞춤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향후 10년 내, 컴퓨터를 활용해 일을 할 때 사용자 개인을 인증한 후 해당 데이터는 본인 외 누구도 접근할 수도가져갈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인증과 보호 방식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이런 기술을 만드는데 동형암호가 큰 역할을 하게 되겠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

천정희 교수가 답변에 욕심을 냈던 질문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게 된 계기, 두 번째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나만의 철학. 이 질문들에는 답변전 깊이 생각하기도 하고, 두 번이나 다시 답변할 정도였다.

사실 과찬의 말씀을 준비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이 천정희 교수가 수학자로, 교수로, 암호학자로 그리고 기업의 대표로 도전하게 된 계기였다.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나는 어떤 계기로 이런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커다란 계기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작은 것들이 쌓여 지금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 순간 조금 더 최선의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길을 걷게 한 것 같아요. 제가 만나는 일들에서 순간순간 최적화를 하다 보니까 지금 여기에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두 번째는 천정희 교수가 학생들에게, 또는 함께 하는 연구자 또는 직원들과 나누고 싶은 철학에 대한 것이다.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게 하자’입니다. 사람은 재미있을 때 힘도 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만큼을 아주 잘하는 게 낫다’ 예요. 절반 이상을 포기하더라도 일부를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주 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변에 많이 이야기해요.”

실제로 천정희 교수는 재미를 느끼며 ‘암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동형암호’의 본격적인 상용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고 있다.

“현재 암호기술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불편함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암호학자로서 제 소망은 암호기술의 불완전성을 극복해 암호에 대한 지식이나 어려운 절차가 없이도 모두가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형암호 기술이 만드는 안전한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한편, 천정희 교수는 NTIS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때에도 개발자의 면모를 보였다. 발명은 불편한 것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플랫폼으로서의 NTIS의 발전적인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제가 여러 기관들하고 과제를 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동일한 일을 반복하거나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찾아봐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NTIS는 여러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이라 이런 과정을 최소화 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한 가지 건의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서 업적평가를 하거나 BK에 평가 자료를 낸다든지 할 때 일일이 제출하지 않고 NTIS에서 정보를 직접 전송하거나 다운 받아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더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웃음)”

내 인생의
한 수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선택

천정희 교수 인생의 한 수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빠른 선택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다. 천정희 교수가 인터뷰 중에도 몇 차례 강조했던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경쟁력을 갖는 것을 찾는데도 많은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천정희 교수는 수학을 좋아해 오랫동안 해왔지만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던 몇 번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학원 시절 ‘내가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고 또 연구하고 있는데 내가 사라진다면 수학계에서 슬퍼할까?’라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민을 하며 꽤 시간이 흘렀지만 수학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천정희 교수가 찾아낸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암호학 연구였고, 누구나 안전하게 자신의 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 누구보다 날선 감각과 치열한 노력으로 암호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천정희 교수

프로필

천정희 교수는 KAIST 수리과학과 박사 취득 후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최고의 암호학회인 크립토(CRYTO)에 6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2008년 아시아크립트(Asiacrypt)와 2015년 유로크립트(Eurocrypt)에서는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저명한 학회 및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천 교수의 업적이 국내 주요 기관에서도 인정되어 2019년 포스코 청암상을 수상, 2021년에는 한국과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출, 2022년에는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다.

2017년 암호기술 전문기업 크립토랩을 설립했다. 크립토랩의 동형암호 기술과 특허는 세계 표준을 주도하고 있으며, IBM과 MS 등 동형암호 산업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크립토랩의 원천기술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를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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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의 말씀 76화

뚫리지 않는 방패, 동형암호의 아버지를 만나다 - 서울대학교 천정희 교수 -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암호의 역사. 암호는 ‘보호’와 ‘탈취’라는 싸움에서 가장 필요한 수단이자 기술이며, 생명을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니그마(Enigma)와 봄브(Bombe)의 암호대결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완벽하게 해독하는 ‘봄브’를 개발해 1,400만 명의 무참한 살상을 막아낸 이 후에도 암호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발전 이면에는 언제나 암호 기술 무력화라는 어둠이 함께하고 있다. 오늘도 소중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암호학의 성배인 ‘동형암호’를 기반으로 한 암호 솔루션 HEAAN(혜안)의 개발자 천정희 교수를 만났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암호학자

스타트업에 뛰어든 암호학자

천정희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이자 암호기술 전문기업 ‘크립토랩’의 대표이다. 직접 만나본 천정희 교수는 취재 전 확인한 수많은 기사 속의 ‘과학자’와 ‘교수님’의 학구적인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어려운 전문 용어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설명해 주는 ‘스토리텔러’의 모습이었다. 스토리텔러 천정희 교수는 어떻게 치열한 정보 보안의 전쟁터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정수론에서 시작해 순수 수학을 연구하며 제가 만든 연구 결과가 얼마나 잘 활용될 수 있는지 늘 궁금해 하며 현실적인 적용을 고민하다 보니 현재의 ‘암호론’을 연구하게 되었어요. ‘암호론’ 연구가 우리 산업 현장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추진력으로 현재 동형암호 전문기술 HEAAN(혜안)의 개발까지 이르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천정희 교수가 개발한 HEAAN(혜안)의 핵심 기술이자 4세대 암호로 불리는 동형암호는 과연 어떤 기술일까? 천정희 교수는 동형암호를 금고 속 데이터라는 쉬운 예를 들어 설명했다.

“동형암호는 연산을 보호하는 암호입니다. 동형암호가 있기 전에는 연산을 하려면 ‘암호’라는 금고에서 데이터를 꺼내 연산을 하고 다시 ‘암호’라는 금고에 넣어야 했습니다. 연산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데이터들은 해커의 표적이 되었죠. 하지만 동형암호를 사용하면 ‘암호’라는 금고에서 데이터를 꺼내지 않고 외부에서 암호화 된 채로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가공이 끝나면 그때 비로소 데이터를 꺼내볼 수 있는 것이죠.”

최근 우리는 데이터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머신러닝 혹은 AI의 경우 고도화된 데이터의 집합체이자 기술 그 자체다. 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천정희 교수가 동형암호 기술을 상용화하며 주목한 포인트도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데이터의 보호였다.

“최근 데이터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머신러닝 혹은 AI를 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Private AI는 동형암호 기술을 사용해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지요.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데이터들은 특히 더 암호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개인정보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중요도가 높은 데이터 분야인 금융·의료·마케팅 분야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기술상용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국방이나 교육, 납세 분야에서도 동형암호를 활용하면 중요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시대의 질서를 만드는 암호

데이터 시대의 질서를 만드는 암호

“몇 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한 흐름은 바로, 사이버 세상을 인터넷에 구축하는 노력입니다. 사이버 세상이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어 편리하지만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요. 이런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호하는 기술로 동형암호, 블록체인 등이 등장했고, 앞으로의 질서를 만드는 이러한 기술들은 수학이라는 학문에 기반해 진화할 것입니다.”

천정희 교수는 메타버스, 블록체인과 같은 서비스에서 나아가 앞으로 주목해야할 차세대 기술로 스낙(SNARK)을 꼽았다. 동형암호, 양자내성암호처럼 민감한 개인 정보를 암호화하면서도 정보의 유효성을 간결하게 단답형으로 검증할 수 있는 스낙(SNARK)이라고 불리는 계산검증 기술이 앞으로 더 많이 연구되고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기술이나 보안기술이 성숙할수록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더 단순해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인증을 위해 지문이나 홍채를 인식하는 작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고도화로 사용자의 자각 없이 여러 가지 요소를 체크해서 자연스럽게 인증하는 멀티 팩터 인증(Multi factor Authentication) 또는 무자각 인증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했다. 인증의 과정은 편리해지고 인증 처리 과정은 고도화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헐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길을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인증되면서 광고판에 맞춤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향후 10년 내, 컴퓨터를 활용해 일을 할 때 사용자 개인을 인증한 후 해당 데이터는 본인 외 누구도 접근할 수도가져갈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인증과 보호 방식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이런 기술을 만드는데 동형암호가 큰 역할을 하게 되겠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

천정희 교수가 답변에 욕심을 냈던 질문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게 된 계기, 두 번째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나만의 철학. 이 질문들에는 답변전 깊이 생각하기도 하고, 두 번이나 다시 답변할 정도였다.

사실 과찬의 말씀을 준비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이 천정희 교수가 수학자로, 교수로, 암호학자로 그리고 기업의 대표로 도전하게 된 계기였다.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나는 어떤 계기로 이런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커다란 계기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작은 것들이 쌓여 지금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 순간 조금 더 최선의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길을 걷게 한 것 같아요. 제가 만나는 일들에서 순간순간 최적화를 하다 보니까 지금 여기에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두 번째는 천정희 교수가 학생들에게, 또는 함께 하는 연구자 또는 직원들과 나누고 싶은 철학에 대한 것이다.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게 하자’입니다. 사람은 재미있을 때 힘도 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만큼을 아주 잘하는 게 낫다’ 예요. 절반 이상을 포기하더라도 일부를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주 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변에 많이 이야기해요.”

실제로 천정희 교수는 재미를 느끼며 ‘암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동형암호’의 본격적인 상용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고 있다.

“현재 암호기술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불편함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암호학자로서 제 소망은 암호기술의 불완전성을 극복해 암호에 대한 지식이나 어려운 절차가 없이도 모두가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형암호 기술이 만드는 안전한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한편, 천정희 교수는 NTIS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때에도 개발자의 면모를 보였다. 발명은 불편한 것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플랫폼으로서의 NTIS의 발전적인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제가 여러 기관들하고 과제를 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동일한 일을 반복하거나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찾아봐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NTIS는 여러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이라 이런 과정을 최소화 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한 가지 건의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서 업적평가를 하거나 BK에 평가 자료를 낸다든지 할 때 일일이 제출하지 않고 NTIS에서 정보를 직접 전송하거나 다운 받아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더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웃음)”

내 인생의
한 수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선택

천정희 교수 인생의 한 수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빠른 선택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다. 천정희 교수가 인터뷰 중에도 몇 차례 강조했던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경쟁력을 갖는 것을 찾는데도 많은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천정희 교수는 수학을 좋아해 오랫동안 해왔지만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던 몇 번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학원 시절 ‘내가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고 또 연구하고 있는데 내가 사라진다면 수학계에서 슬퍼할까?’라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민을 하며 꽤 시간이 흘렀지만 수학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천정희 교수가 찾아낸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암호학 연구였고, 누구나 안전하게 자신의 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 누구보다 날선 감각과 치열한 노력으로 암호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천정희 교수

프로필

천정희 교수는 KAIST 수리과학과 박사 취득 후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최고의 암호학회인 크립토(CRYTO)에 6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2008년 아시아크립트(Asiacrypt)와 2015년 유로크립트(Eurocrypt)에서는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저명한 학회 및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천 교수의 업적이 국내 주요 기관에서도 인정되어 2019년 포스코 청암상을 수상, 2021년에는 한국과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출, 2022년에는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다.

2017년 암호기술 전문기업 크립토랩을 설립했다. 크립토랩의 동형암호 기술과 특허는 세계 표준을 주도하고 있으며, IBM과 MS 등 동형암호 산업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크립토랩의 원천기술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를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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